숨겨서 담는 글, 겨누어 담는 글 정준기 · 중2 국어 「세상을 담은 글」 · 책자 수록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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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준기 — 글 쓰는 모습 연필 스케치
초신성 연논술 · 학생의 글

숨겨서 담는 글,
겨누어 담는 글

정준기 · 중앙중학교 2학년
「세상을 담은 글」을 읽고

같은 시대를 담았는데 한 편은 끝까지 이름을 부르지 않고,
다른 한 편은 처음부터 정면으로 겨눈다.
글이 세상을 담는 방식은 하나가 아니다.

책 읽는 모습하나한 번도 그 이름을 부르지 않는 시

신석정의 「꽃덤불」은 일제 강점기를 이야기하는 시다. 그런데 이 시에는 '일제 강점기'라는 말이 한 번도 나오지 않는다. 대신 이렇게 말한다.

태양을 등진 곳. 달빛이 흡사 비 오듯 쏟아지는 밤. 헐어진 성터.
— 신석정 「꽃덤불」에서

어두운 곳, 밤, 무너진 자리. 시는 이렇게만 말한다. 그리고 딱 한 번, 숫자로 "서른여섯 해"라고 한다. 1910년부터 1945년까지, 나라를 빼앗겼던 그 햇수다. 그 한 줄이 있어서 앞의 어둠이 무엇이었는지 뒤늦게 밝혀진다.

이 시에서 가장 오래 눈이 머무는 자리는 '벗'이 나오는 대목이다. 시인은 벗을 세 번 부른다.

영영 떠나버린 벗그 시절에 목숨을 잃은 사람들
멀리 떠나버린 벗떠돌거나 나라 밖으로 망명한 사람들
몸과 마음을
팔아버린 벗
반강제로 일제에 동조하게 된 사람들
생각하는 모습

세 번째가 눈에 걸린다. 몸과 마음을 판 사람을 시인은 '벗'이라고 부른다. 배신자라고 부르지 않는다. 부르는 말을 바꾸지 않았기 때문에, 이 대목은 비난이 아니라 안타까움이 된다. 누구를 탓하는 시가 아니라, 그 시대를 함께 통과한 사람들을 아파하는 시가 되는 것이다.

시는 광복을 '오롯한 태양'이라고 부른다. 어둠에서 태양으로. 이야기가 여기서 끝났다면 기쁜 시가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시는 한 걸음 더 간다.

겨울밤이 아직도 차니…
— 광복 이후를 말하는 마지막 연에서

광복은 왔는데 아직 춥다. 미국과 소련이라는 다른 나라의 힘이 여전히 이 땅에 남아 있던 때다. 그래서 시인이 마지막에 바라는 '꽃덤불'은 광복이 아니라, 그보다 더 먼 곳 — 완전한 독립이다.

시는 끝까지 그 이름을 부르지 않는다.
그런데도 읽는 사람은 안다.

팔짱 낀 모습정면으로 겨누는 이야기

「홍길동전」은 정반대다. 이 소설은 숨기지 않는다.

길동은 첩의 아들로 태어났다는 이유로 천대를 받는다.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벼슬길도 막힌다. 밖으로 나가 보면 탐관오리가 백성의 재물을 빼앗고 있다. 소설은 이 모든 것을 그대로 보여 준다.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독자가 짐작하게 두지 않는다.

칠판 앞에서 설명하는 모습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길동이 스스로 잡히는 대목이다. 조정이 길동을 잡으려 하자 길동은 도망치지 않고 제 발로 잡힌다. 그리고 임금 앞에서 이 나라의 제도가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설명한다. 그 결과로 병조 판서 자리를 얻어 낸다. 도둑이 임금 앞에 서서 나라의 잘못을 말하고 벼슬을 받아 낸 것이다.

그런데 결말이 이상하다. 길동은 조선을 고치지 않는다. 조선을 떠나 율도국이라는 새 나라를 세우고 거기서 태평성대를 이룬다. 잘못을 다 알고, 임금에게 말도 했는데, 결국은 떠난다. 조선 안에서는 그 벽을 넘을 수 없다고 본 것이다. 이 소설이 가장 세게 비판하는 지점은 어쩌면 이 결말일지도 모른다.

「꽃덤불」은 감춰서 말하고,
「홍길동전」은 드러내서 말한다.
두 편 다 세상을 담았다.

글 쓰는 모습그리고 지금 쓰는 글도

이 단원은 시와 소설을 배우다가 갑자기 방향을 튼다. 뒤쪽 절반은 '복합 양식 자료를 활용하여 글쓰기'다. 문자에 사진과 영상을 섞어 쓰는 법, 그리고 계획하기부터 고쳐쓰기까지 다섯 단계를 배운다. 옛 문학을 읽다가 왜 갑자기 글쓰기가 나오는지, 처음에는 이어지지 않아 보인다.

그 답은 이 단원이 마지막에 보여 주는 글에 있다. 「가을 시간 여행, 그렇다면 군산」이라는 블로그 글이다. 시도 소설도 아니고, 누군가 여행을 다녀와서 인터넷에 올린 소개글이다.

그런데 이 글의 짜임을 보면 이렇다. 가운데 부분을 둘로 나누어, 앞에서는 일제 강점기에 지어진 건물을 보여 주고 뒤에서는 1970~80년대의 건물을 보여 준다. 군산이라는 도시를 시대 순서로 걸어 들어가는 것이다. 여행 소개글이 시대를 담고 있다.

신석정은 시로 담았고, 허균은 소설로 담았고, 이 사람은 블로그로 담았다. 쓰는 도구가 다르고 시대가 다를 뿐, 하는 일은 같다. 단원의 제목이 「세상을 담은 」인 이유가 여기 있는 것 같다. 시나 소설만 세상을 담는 것이 아니다.

정리하면 이렇다. 세상을 담는 방법은 하나가 아니다. 끝까지 이름을 감추면서 담을 수도 있고, 처음부터 정면으로 겨누면서 담을 수도 있다. 「꽃덤불」과 「홍길동전」은 같은 일을 정반대 방식으로 해낸 두 편이다.

멀리 바라보는 모습

그리고 그 일은 백 년 전 시인과 사백 년 전 소설가만 한 것이 아니다. 오늘 블로그에 여행기를 쓰는 사람도, 지금 이 글을 쓰는 나도 하고 있다. 무엇을 쓰든 그 안에는 내가 사는 시대가 조금씩 들어간다. 그것이 이 단원이 알려 주려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글에 대하여 — 정준기 학생이 국어 1단원 전체를 스스로 정리해 발표한 내용을, 읽는 글의 형태로 엮은 것입니다. 작품 해석과 판단은 모두 발표에서 학생이 직접 말한 것이며, 엮는 과정에서 순서를 다시 잡고 문장을 다듬었습니다. 발표 원문 그대로는 「정준기 국어 발표 분석」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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